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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파리에서... 가족 없이 사는 것이다! - 다시 읽은 <테레즈 데케루>

RAPHA Archives 2023. 5. 6. 21:47

프랑수아 모리아크 François Mauriac의 <테레즈 데케루 Thérèse Desqueyroux>를 다시 읽었다. 4학년 <프랑스 현대소설> 전공 수업 교재로 읽었으니 14년 만에 다시 읽은 것이다. 원래 한 번 읽었던 책은 다시 잘 안 읽는데, 재독 계기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책을 번역하게 되면서였다. 문학 번역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다룬 모리아크의 책을 운명처럼 만나게 된 이후, 모리아크의 생애, 가치관, 배경, 특히 그를 지배했던 독실한 신앙(가톨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했던 것이다. 대학 교재로 읽었던 작가, 심지어 노벨문학상을 탄 대문호의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는 감개무량과 함께 그때 읽었던 책을 재독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테레즈 데케루>를 집어 들었고 이어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다시 읽어보며 고전 탐독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10년을 넘게 더 살았는데 말이지, 시간이 지난 후에 고전을 읽으면 그때랑은 다른 느낌일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고(<좁은 문>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을 읽고 짧게라도 감상을 정리하고 싶어서 독서 노트도 준비했건만... 역시 손으로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브런치에 나만의 독서 노트를 한 번 남겨보기로 했다. 평소처럼 꼭 길게 쓰지 않아도 되니까 자판으로라도 짧게 감상을 남기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그 시작을 <테레즈 데케루>로 선택했다.
 
 
책 소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최고의 역작

자유를 억압하는 숨 막히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남편의 몰이해와 의사 단절로 인해 고통받으며 살아가던 테레즈는 남편을 독살하기 위해 그가 상용하는 심장병 약 속의 비소량을 조금씩 늘린다. 하지만 비소의 양이 지나치게 늘어난 처방전을 수상히 여긴 약제사의 제보로 독살은 미수에 그치고 만다. 체포된 테레즈는 체면을 중시하는 집안사람들의 허위 진술 덕분에 공소 기각 판결을 받고 풀려나지만, 평생 동안 의좋은 부부를 연기하며 유폐 생활을 할 것을 강요당한다. 절대 고독 속에서 테레즈의 생명은 서서히 좀먹어 들어가는데…….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모리아크가 청년 시절에 법정에서 목격했던 사건을 기초로 쓴 것이다. 남편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회부된 작고 가냘픈 여인과 증인의 증언과 물증인 위조된 독극물 처방전은 실제 사건에서 빌려온 소재이다. 결혼, 가정, 사회의 금기들에 반항하는 테레즈라는 인물을 통해 모리아크는 인간의 내적 욕구와 마음속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범죄 본능을 묘사하며 진실의 추구에서 빚어지는 불안과 혼란을 선명히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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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문장

Si elle avait l'argent, elle se sauverait à Paris, irait droit chez Jean Azévédo, se confierait à lui ; il saurait lui procurer du travail. Etre une femme seule dans Paris, qui gagne sa vie, qui ne dépend de personne... Etre sans famille ! 

그녀에게 돈이 있다면, 파리로 도망가서 곧바로 장 아제베도의 집에 가 그에게 몸을 맡길 텐데. 그는 그녀에게 일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며 파리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 가족 없이 사는 것!

 
숨 막히는 집안에서 벗어나 파리에 가면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을 독살하려고 시도한 테레즈는 시누이가 한때 사랑에 빠졌었던 장 아제베도를 떠올린다. 그는 파리로 떠났다. 그를 따라 파리에 가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는다. 부모와 남편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파리에 가면 내 가족은 내 마음대로 선택한다. 혈연이 아닌, 정신이나 육체에 따라서! 테레즈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 구절을 선택한 이유는 파리에서 살던 내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1927년 모리아크의 펜 끝에서 태어난 테레즈에게는 상상의 세계에 불과했지만(물론 마지막에 남편을 떠나 홀로 파리에 살아가는 듯한 암시를 한다) 나와 친구들에게 파리에서의 독립적 삶은 현실이었다. 가족 없이 사는 것...! 해외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외롭지 않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히 가족을 못 봐서 괜찮냐는 것은 단골질문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물론 완전 혼자가 아닌 가족(aka. 남편)과 살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해외로 도망갈(?!) 궁리만 하던 나는 다른 것 때문에 힘들기는 했어도 외국에서 '혼자 사는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조국을 평생 떠나 살아도 상관없을 정도로(여기에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도 포함) 그렇게 해외에 나가고 싶을까? 인생의 20%를 출퇴근에 쓴다는 말이 있을 만큼 기나 긴 경기도민의 대중교통 이동시간, 할 일 없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자문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에 가기 전, 나는 정말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했다. 고로 앞 질문의 답은 당연히 'yes!!'였다.
 
그랬던 내가 가족 옆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공백기를 만회하려고 나름의,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효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독립된 삶을 꿈꾸고 있지만, 내 안에 변함없이 장착된 노마드 모드가 또 꿈틀대고 있지만 반경 10km의 생활을 유지하는 중이다. 가야 할 때와, 가지 말아야 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도 완전히 변화된 나의 가치관 중 하나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이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남편 독살에 실패한 테레즈가 마침내 독살에 성공했던가? 예상과는 다르게 끝끝내 남편에게 독살의 이유를 숨긴 테레즈는 카페 드 라 페(Café de la Paix)에서 만난 남편과 헤어져 파리의 거리로 사라진다. 비슷한 유형의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와 혼동되었나 보다. 보바리 부인은 권태를 이기지 못해 바람을 피우고 파산을 당해 결국 자살한다. 엠마는 스스로 파멸했지만 테레즈는 자유를 찾았다. 1856년과 1927년이라는 70년의 온도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테레즈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파리에서 살아가겠지. 
 
반대로 파리에서 돌아온 나는 지금 테레즈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좁은 동선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의 유배와 생클레르에 유배된 테레즈는 엄연히 다르다. 나는 선택했지만,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펭귄 클래식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그러나 생클레르에 유배된 여인의 조롱 섞인 이미지는 수백만의 열광적인 독자 팬을 양성했다. [...] 독자들의 인종, 국적, 이데올로기, 종교가 무엇이든지 간에, 전 세계의 젊은 여성들은 테레즈를 이해하고 테레즈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 비록 살인 미수자였지만, 비록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수많은 엠마와 테레즈, 그리고 안나(카레니나)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 시대에 파리에서 혼자서 공부하고, 일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