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날, 뉴스에 나온 도시 전문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수해가 나고 복구하는 데 100이 필요하다면, 예방하는 데에는 10이 필요하다고. 그만큼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무엇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문화재에서도 이 원칙은 아주 잘 들어맞는다. 문화재가 세상에 등장한 이상 세월의 흐름에 따라 손실은 불가피한 일이다. 따라서 최대한 문화재가 원래 가진 형태나 특성을 유지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행위를 하는 모든 조치를 보존(conservation)이라고 한다. 보존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크게 보면 예방 보존(conservation préventive), 그리고 복원(restauration)이 있다. 예방 보존은 말 그대로 문화재 손상을 막기 위해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것이고 복원은 원형이 훼손된 문화재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말한다.
문화재 보호법 제3조에 명시된 문화재 보호의 기본 원칙은 문화재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이다. 원형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문화재가 훼손되기 전에 예방을 잘하고 손상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 -자연재해나 인위적인 사건, 사고- 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는 복원을 해야 하지만 파괴되었다고 아무 때나, 또 아무렇게나 복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복원은 문화재에 개입하는 활동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64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제2차 역사적 기념물의 건축가 및 기술자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세계의 건축 문화재 보존, 복원 전문가들이 이곳에서 모여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념물과 사적지의 보존, 복원을 위한 국제헌장>, 일명 <베니스 헌장>이 채택되었다. 이 베니스 헌장의 제9조에서는 복원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복원은 본래의 원래의 재료와 기록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두고, 추측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복원을 멈추어야 한다.'
베니스 헌장과 나라 문서 등을 비롯한 기존의 국제헌장과 원칙에서 정한 기준을 존중하여 한국의 실정과 현실에 맞게 기준을 만든 문화재청이 마련한 문화재 수리 업무 편람 제3장 복원에 관한 사항에서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제11조 복원의 원칙 : 1) 복원은 고증에 의하여 충분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통하여 역사, 문화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 2) 유적의 복원은 지상 또는 지하에 남아 있는 유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제12조 복원의 제한 : 유적의 가치를 왜곡시키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복원은 제한되어야 한다.
즉, 복원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고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남아 있는지, 그래서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고 복원을 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보존과 복원에 대한 치열한 논의로 보존과 복원 원칙이 확립된 유럽에서는 복원을 하지 않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단, 앞서 말한 것처럼 확실하게 원형을 알 수 있을 때에만 복원을 한다. 2년 전 화재로 무너진 노트르담도 이러한 원칙에 따라 화재가 나기 직전인 19세기 형태로 복원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런 프랑스의 문화재 복원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오늘은 그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트르담이 화재로 불타기 몇 달 전인 2018년 겨울, 그때는 노란 조끼 시위가 한창이었다. 매주 주말마다 시위대는 파리 여기저기, 특히 샹젤리제 거리를 가득 메웠다. 파리 시내 곳곳에 자동차 진입이 불가능했고 샹젤리제 거리는 지하철도 서지 않아 매우 불편했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일, 시위대가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을 덮쳤고 안에 있는 마리안느 상과 조각들을 파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1세기에 일어난 반달리즘이었다. 이 마리안느 상은 프랑수아 뤼드(François Rude)가 만든 개선문의 고부조 중 머리 석고 모형이다. 사실 이 부조는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하는, 1792년 제1차 대프랑스 동맹군에 맞서 싸운 의용군의 헌신을 표현한 작품이다. 바로 이 부조의 중심에 서 있는 날개 달린 승리의 알레고리 머리의 석고 모형이 부서진 것이다(이 머리가 정치적인 이유로 마리안느가 될 수 없다고도 하는데 마리안느로 통칭되는 듯..).
프랑스에서 촬영할 때 보통 서치나 연락, 인터뷰 번역을 했고, 통역은 거의 하지 않았다. 통번역을 같이, 심지어 둘 다 잘하는 분들도 많지만 나는 번역형 인간이라서 아주 가끔, 내 전공에 관련된 분야에 갈 일이 생기면 현장 방문 겸 통역을 하곤 했다. 마리안느 상이 파괴된 지 5개월 만에 복원되었다는 소식을 취재해야 했고 그 어느 것보다 전공과 딱 맞아떨어지는 주제라 설레는 마음으로 개선문에 방문할 준비를 했다. 전공 관련 분야일 때만 통역을 했기 때문에 정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인데 얼마 되지 않은 통역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인터뷰이는 당시 개선문 총괄 책임자 브뤼노 코르도(Bruno Cordeau)씨였다(코르도 씨는 지금 Hôtel de la Marine을 담당하고 개선문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실제 문화재 관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직접 들은, 수업에서도 거의 접할 수 없었던(가끔 특강으로 실무자가 와야지 들을 수 있는...) 정말 재밌었던 경험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두 가지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개선문은 국가 소유의 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부 산하 기관인 국가 기념물 센터(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에 속해 있다. 국가 기념물 센터는 기념물을 관리하고, 홍보하며 보존, 복원,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국가 유산에 대한 지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출판사를 운영해 양질의 서적을 출판하기도 한다(문화재 관련 도서 구하고 싶을 때에는 마레 지구의 Hôtel de Sully로..). 프랑스 전역에 100개가 넘는 국가 기념물이 센터에 속해 있고 기념물의 중요도와 예산에 따라 1명의 행정관이 1개 또는 여러 기념물의 총관리를 맡는다. 개선문이나 팡테옹, 몽생미셸 수도원 같은 주요 기념물은 한 명이 담당하지만 지방의 기념물은 한 명이 여러 개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 기념물 센터의 이런 짜임새 있는 조직 및 관리 체계에 충격을 받았다. 아마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배우러 갔던 프랑스의 문화재 관리, 행정 구조를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도대체 왜 선진국인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프랑스라는 나라는 엉성한 것 같지만 문화재 관리 체계만큼은 굉장히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념물의 행정관은 일반적인 관리에 대해서는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센터로부터 위임받지만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건물을 보수, 유지하는 데에는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그럴 때 센터의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고 센터의 허가를 받는다. 또 행정관 자리에 일괄적으로 고위 공무원이 임명되는 것이 아닌, 기념물의 특성에 따라 전문성을 가진 담당자를 배치한다. 고고학자가 필요한 곳에는 고고학자를, 큐레이터가 필요한 곳에는 큐레이터가 배정되는 것이다. 개선문은 기술이 필요한 곳이라 문화 분야 엔지니어(루브르 박물관 등)였던 코르도 씨의 경력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개선문은 노트르담과는 다르게(그때는 노트르담 화재가 일어난 직후라 더욱 충격적이었다) 석재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항상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200년이 넘은 개선문 곳곳에 현대적인 화재경보기와 연기 배출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렇게 화재 감지하는 장비도 물론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화재가 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매년마다 기념물의 화재 장비를 검사하고, 보안 위원회가 기념물을 방문해 검사 시스템이 잘 작동되었는지 확인한다. 노트르담 공사 중에 화재가 난 것처럼 기념물이 공사 중일 때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데 그래서 공사를 할 때마다 특별한 문서를 작성하고 사전검사를 하며 공사가 끝난 2시간 후에는 불이 나지 않았는지 사람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계속 관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충격 포인트는 복원 과정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 복원에서는 원형 유지가 가장 중요한데, 마리안느 상의 훼손된 파편은 약탈이 일아난 그날 대부분의 조각을 찾았고 그 덕분에 오리지널에 가깝게 복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코 끝이 약간 떨어져 나간 채로 복원되었는데 훼손된 이유가 노란 조끼에 의해서인지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두었다고 했다. '복원은 본래의 원래의 재료와 기록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두고, 추측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복원을 멈추어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최대한 많은 수의 오리지널 조각을 수거한 뒤에는 공개경쟁을 통해 복원가를 선발하였다. 큐레이터와 복원가가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 논의하며 복원을 진행하기 때문에 선발 역시 담당관의 재량이 아닌 흉상과 조각 등을 담당하는 큐레이터의 임무이다. 물론 기념물의 특성에 따라 그에 맞는 행정관을 지정하지만 그들은 총관리를 하는 제너럴리스트로, 보존이나 복원, 건축, 또는 마케팅, 보안 전문가 등 문화재 관련 스페셜리스트가 한데 모여 문화재를 잘 관리하고 유지하여 후대에 물려준다는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것이다.
1*년 전, 문화예술 분야에 비슷한 관심을 가진 과 동기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졸업을 앞둔 우리는 공무원 체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때는 로스쿨이 막 처음 시작되었던 때였고 이미 로스쿨의 부작용도 예상했었기 때문에 경력경쟁채용 위주의 문제점 역시 인식하고 있었고 그런 면에서 투명한 고시가 더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하긴 했지만 공무원 시험 보다도 경력경쟁채용 같이 전문성 위주로 뽑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푸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단지 시험을 보기 싫어서 불만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전문성을 강조하는 프랑스 시스템이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 역시 학교 입학이며 여러 시험을 통과한 문화재 분야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자들이다(사실 프랑스는 철저하게 엘리트주의에 입각한 나라...). 각자의 사정에 맞는 일장일단이 있기에 뭐가 맞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만, 중요한 건 가능한 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르도 행정관도 예방을 더욱 강조했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재해는 막을 수 없지만 예방이 가능하고 예상이 가능한 사고는 최소한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재 전문인력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하고, 비록 당장의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시간을 들여야 하며 무엇보다 문화재를 왜 보호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80년 만에 쏟아지던 폭우 속에서 다시 한번 예방과 보존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았다. 아, 폭우뿐만 아니라 김해 고인돌 참사도...
P.S.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그때를 복기하면서 추가로(?) 충격을 받은 점이 있다. 파괴된 지 5개월 만에 복원이 완성되었다는 것인데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그 기간이 한국에 와서 돌이켜보니 왜 그리 오래 느껴진 건지! 어떻게 얼굴 한쪽 복원하는 데 5개월이나 걸리지?라고 생각했던 관점의 변화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언제 이렇게 다시 한국 패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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