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그만둔 거, 하나님 뜻이 아닌 것 같아."
어느 토요일 오후, 남편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회사로 가는 길에 갑자기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지? 느닷없이 하나님이 왜 나와?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은데, 난 그걸 하나님 뜻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해서 돈을 벌까,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더 벌까?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는 중에 유튜브 예찬론자(?)인 남편은 내가 열심히 만들다 그만둔 미술사 유튜브가 아까워서 계속 꾸준히 하면 좋겠다, 계속하면 언젠가 돈이 될 것이라는 마음에 앞뒤 다 잘라먹고 저렇게 얘기했던 것이다. 유튜브 그만둔 게, 아니 유튜브를 넘어서 내가 전공을 때려치운 게 내가 그걸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해서 그만둔 줄 알고.
2021년 가을, 브런치 작가에 처음 도전했을 때 만든 콘셉트는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나의 전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파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밌게 글로 풀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내가 왜 프랑스를 좋아했고, 왜 이 전공을 선택했고 또 왜 프랑스를 가게 되었는지를 가장 먼저 정리해 보았다.
그래서 결론은, Histoire de l'art(미술사)
계속 그런 글들을 썼고 그런 글들을 모아 '왜 그렇게 프랑스가 좋았나요?'라는 무려 126분! 분량의 거르고 거른 22화짜리 브런치북이 탄생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해마지 않았던 프랑스가, 그렇게 사랑해마지 않아서 내 평생의 전공이라고 굳게 믿었던 문화유산 보존이 어느 순간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그 흔적은 브런치 글 곳곳에 남아 있는데, 특히 '어느 인문학도의 고백 01'이라는, 1년이 지난 아직도 2편을 쓰지 못한 그 글에 짙게 배어 있다. 물론 이 글에서 전부 다 설명하진 않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전공을 떠나보냈고 다시 길을 잃고 헤매는 사이 글을 쓸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글 발행 간격이 매우 넓고, 프로필도 공사 중으로 바꿔놨다.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다음, 나의 인생을 바꾼 수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던 그 당시를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과의 학생이 되어 맞은 첫 학기,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았던 그때,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럽'의 '사회'와 '문화'를 배우는 수업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다 듣도 보도 못했던 유럽연합의 문화정책이라니, 그리고 그 문화정책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브랜드가 만들어졌다니.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라고 외친 이유가 이거였을까?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은 콜럼버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이 공부를 하고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기나 긴 탐색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1년 후 교환학생을 갔을 때, 지금은 모 대학의 교수님이 되신 수업 담당 강사님에게 메일을 보내서 상담을 하기도 했다.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찾아내고 싶었다. 대체 한국인으로서 유럽연합의 문화정책을 어떻게 배울 수 있으며, 또 유럽연합에 들어가서 문화정책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국인으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은 뒤, 결국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화유산 보존 정책과 그 역사까지 흘러들어 갔던 것인데.
그렇게 사랑했던 것들인데, 한순간에(혹은 가랑비에 옷 젖듯?)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전공과 프랑스뿐만 아니다. 임신하면 술을 못 마시니까 오히려 임신할 걸 걱정할 정도로 못 끊던 술도, 가장 좋아하는 미술 사조인 로코코와 아르누보도, 얼마 안 남은 취미 중 하나인 웹툰도 다 끊어버렸다. 무조건 우수하다고 칭송하던 서구 문화 또한. 아무도 나에게 강요한 적은 없다. 다만 내 눈에 씌운 필터가 바뀌었을 뿐이다. 세계관이 뒤집어져 버린 것이다.
아, 그럼 차라리 이것을 글로 써 보면 어떨까? 헬조선이라고 대한민국을 욕하며 유일한 꿈은 유럽 이민이었던 자칭타칭 서구 사대주의자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프랑스의 개인주의를 사랑하고 한국의 집단주의가 숨이 막혀 프랑스로 도망간 Francophile는 왜 anti-French가 되었는가(아, 물론 안티까지는 아니고). 아르누보 Art nouveau를 논문 주제로 진지하게 고민하던 세기말, 벨에포크 마니아가 벨에포크의 이면에서 발견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유럽과 프랑스 문화의 숭배보다는 오히려 이게 더 재밌지 않을까? 원래 안티보다 팬에서 돌아선 팬티(팬안티?)가 제일 무서운 법이라고.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는데, 30년 넘은 저 사대주의자를 변화시킨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는 남편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 난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한낱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뜻을 알랴.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다 나와 있고, 성경에 반하지 않는 이상 금지된 직업은 없는걸.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일 뿐. 나의 이런 주관적이고 애매한 말을, 그래서 마구마구 알리고 싶다가도 얻다가 써먹을 수 없는 부끄러운 마음을 언어의 연금술사이자 시대의 지성이었던 고 이어령 교수님은 이렇게 멋들어지게 표현을 하였다.
내 근거지인 휴머니즘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지요.
더는 그 집에서 살 수가 없어요.
이어령, <당신, 크리스천 맞아?>, 열림원,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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