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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Histoire de la France

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석사 수업을 듣는다 01 feat.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교육

RAPHA Archives 2021. 10. 26. 01:09

프랑스 대학을 다닐 때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특별히 의아했던 점은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꼭 가고 싶은 학교를 가야만 했던 집념 때문이었는지 학교를 3곳이나 다녀보았는데, 석사 2학년을 다녔던 학교에서 이 현상은 유독 두드러졌다.

 

한국보다 빠른 (만) 나이에 학교를 들어가는 데다 학사는 총 3년이라 거기에서 또 1년이 세이브되고 남자들은 군대를 갈 필요가 없으니 유급 없이 학사를 바로 졸업만 하면 만 21, 22세에도 석사를 시작할 수도 있는 곳이 프랑스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몇십 년 일을 하다 다시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서 느지막이 석사에 입학하는 어른들도 많았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수업 시간에 앉아 있는 건 사실 그렇게 이상한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늦깎이 학생이라고 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내가 들었던 한 수업에서 학생은 나 혼자 뿐이었고 10여 명 되는 나머지 학생들은 전부 할아버지 할머니들. 거기다 나 혼자 동양인 학생이었으니 튀기 싫어하는 나는 수업에 앉아 있는 것 자체로 고역이었다. 물론 수업은 재밌었지만. 

 

어쨌든 그런 낯선 풍경 속에서 하루 이틀 적응을 하다 보니 그분들이 정식 학생이 아니라 청강생(Auditeur libre)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이 아니라 청강생이라니, 이건 또 이것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 학기 학비를 몇 백만 원씩이나 내고서도 수강 신청이라는 전쟁을 거쳐야 하는 전공생도 전공 강의를 못 듣는 판국에 청강생이라니, 그것도 석사 전공 수업에? 그 무엇보다 폐쇄적인 입학 과정을 거쳐 철옹성 같은 학벌 체제에 둘러싸여 학부생 시절을 보낸 한국 대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처럼 한 학기에 학비를 몇 백만 원씩 내는 것도 아니고 불꽃 튀는 수강신청 전쟁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로 청강생의 존재는 수업에 별 영향은 미치지 않는, 아니, 오히려 나와 교수가 1대 1로 수업을 해야 하는 불상사(?)를 막아준 고마운 존재였다. 아, 발표할 때 관람객이 더 많아진 건 좀 싫었지만. (청강생은 발표를 하지는 않지만 발표자한테 질문은 한다...)

 

그리고 몇 달, 몇 년을 더 관찰해본 결과, (우리 지도교수) 청강생들은 거의 매년 수업을 등록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교수와 여타 학생(특히 박사과정생)들과도 유대 관계가 좋았다. 지도교수 수업이 끝나는 6월에는 매년 프랑스 상원인 Sénat에서 종강 파티처럼 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조직하는 일도 청강생들이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통 분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청강 제도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Université)에서 시행하고 있었다. 청강생은 당연히 학생 자격이 없기 때문에 등록 또는 출석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고, 시험도 응시하지 않으며 발표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학생증을 소지하더라도 프랑스 학생이 보장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보조금, 대학 기숙사, 사회 보장)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청강 제도는 각종 혜택과는 관계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학교의 청강 제도 홈페이지의 첫 문장을 보면 어렴풋이 알 수가 있는데, 바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교육의 기회. 

 

 

EPHE는 창립 이래 인문학 및 사회과학 강의를 대중에게 공개했습니다.
학교에서 연구하는 주제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학위 조건에 상관없이 등록할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내가 졸업한 이곳은 1868년 이름 그대로 '실용적(Pratique)' 연구 교육 방법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 기관이다. 1864년 프랑스의 언어학자, 철학자, 종교사가이자 비평가인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은 '가장 풍부하고 가장 유연한, 그리고 가장 다양한 지적 운동'을 일으킨 독일 대학과 비교하여 4세기나 5세기의 수사학자보다 현대 과학 교육 수준이 낮은 프랑스 고등 교육을 한탄하는 글을 게재했다. 1863년 6월부터 나폴레옹 3세의 공교육 장관이었던 빅토르 뒤루이(Victor Duruy)는 르낭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교육부에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및 독일의 고등 교육 기관에 대한 비교 조사 수행을 위임하였다. 그리고 1868년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처참했다. 연구 수단의 부족, 너무 적은 수의 의자, 노후화된 건물, 보잘것없는 도서관,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연구원 등... 게다가 소르본, ENS, 콜레주 드 프랑스의 유명 교수들은 학생들을 원형 강의실에 한꺼번에 몰아넣고 일방적으로 교수가 강의를 하는 전통적인 대형 강의에 만족하고 있었다. (음 근데 이 단점들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전통을 깨고, 기존 대학과는 달리 초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닌 해당 분야에서 이미 심도 있는 교육을 받은 학생과 학자를 받아들이고, 대형 이론 강의 대신 연구실과 세미나에서 하는 교육을 개편한 실습을 통한 연구를 우선시하게 된 곳이 바로 EPHE였다. 따라서 19세기 말 유럽 모델, 특히 독일에서 영감을 받은 프랑스의 독창적인 구조인 EPHE의 창설은 당시 고등 교육 개혁을 위해 투쟁하던 많은 학자들의 투쟁의 결과에 빚을 지고 있다. 

 

 

 

 

2편에서 계속

 

 

https://education.persee.fr/doc/baip_1254-0714_1868_num_10_180_26653

 학교 설립 근거가 된 1868년 법안 01

 

 

 

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석사 수업을 듣는다 0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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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석사 수업을 듣는다 02 feat.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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