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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Histoire de la France

'자살당한 프랑스'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 프랑스(와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RAPHA Archives 2022. 2. 7. 03:25

오랜만에 프랑스 꿈을 꾸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프랑스 유세현장. 거기에는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각 당의 관계자, 지지자, 그리고 웬일인지 한국인들도 앉아 있었다. 마치 대통령 취임행사처럼 의자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역시 꿈이라 앞뒤 맥락이 없었던 걸까. 유세현장이라고 했는데 이미 마크롱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고 했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제부터가 꿈의 하이라이트. 마린 르펜이 일어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옆으로 지나갔다. 한 명 한 명씩 훑어보던 르펜은 한국인들만 보이면 그들에게 욕을 했다. 쓰레기 같은 예술가들(왜 하필 예술가였는지), 너네 나라로 꺼져라. 내 앞에 시동생인지, 남편인지 아무튼 나의 가족이라는 사람이 앉아 있었고 르펜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인종차별주의적 행태를 퍼붓는 르펜을 제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했을 뿐이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마치 발표를 앞둔 마음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내 앞까지 온 르펜은 나의 가족에게 욕을 하며 우유를 뿌렸고 나는 속으로 제발 나는 그냥 지나쳐가기를 기도했다. 그 덕분인지 르펜은 내 옆을 그냥 지나쳤고 나는 안도하면서도 한 편으로 모욕을 받은 가족이 오늘 일 때문에 프랑스에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지,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깼다.


몇 달 전 꾼 꿈이었는데 기억이 생생할 때 글을 적어놔서 그런지 다시 봐도 생생하다. 아마 얼마 남지 않은 대선과 프랑스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반영된 꿈이 아니었나 싶다. 벌써 5년 전이라는 시간이 되어버린(그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2017년 5월, 2일 차이로 2017년 프랑스와 한국 대선이 치러졌다. 대사관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 투표를 한 한국 국적의 소유자였지만 마음만은 명예 프랑스 시민이었던 나는 만 39세의 젊은 대통령(할아버지가 아닌 거의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 차이의)을 뽑은 프랑스가 진심으로 부러웠고 그를 나의 대통령처럼 여겼다. 사실 엘리트주의를 옹호했던 나는 프랑스 최고 관리들의 엘리트 코스인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과 국립행정학교(ENA: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 출신이자 로쉴트(로스차일드) 투자은행에 입사해 초고속으로 승진한 능력 있는 금융인인 마크롱이 대통령직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17년 4월, 마크롱과 르펜의 유세 현장에 갔다. 마치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처럼 르펜의 유세 현장에는 온통 백인만, 마크롱의 유세 현장에는 다양한 인종이 있었다. 아무리 싸데펑(Ça dépend)과 주멍푸(Je m'en fous)의 나라인 프랑스이지만 그래도 프레스라고 하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렇게 합법적으로 대우받는(!) 프레스 배지를 달고 유세 현장에서 취재를 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린 르펜의 유세 현장에 가기에는 마음이 쫄렸다. 아마도 극좌보다는 극우를 더 혐오하는 상황에서 르펜은 프랑스의 나쁜 극우의 상징이자 극우의 여전사 이미지로 낙인찍혔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더더욱 르펜이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랐었지만 솔직히 내가 프랑스 사람이라면 르펜을 지지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프랑스의 상황은 심각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갑자기 나타난 신예 마크롱이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의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때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 마크롱 유세 현장. 동병상련 프레스가 가득가득. 마스크 안 쓴 모습이 왜 이렇게 어색할까?



노란 조끼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코로나 악재... 그리고 여전한 테러의 위험까지. 정치 초년생 마크롱의 첫 임기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보였지만 처음치고는 선방한 것처럼 보였고 아무리 그래도 르펜이나 멜랑숑 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입장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랬다. 프랑스에서 백신 패스를 시행할 때 물론 짜증은 났지만 전 세계적인 흐름이니까 정치인으로서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전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기사를 보았다.

« Je ne suis pas pour emmerder les Français. Je peste toute la journée contre l’administration quand elle les bloque. Eh bien, là, les non-vaccinés, j’ai très envie de les emmerder », explique-t-il, accusant les antivax « d’une immense faute morale ». « Ils viennent saper ce qu’est la solidité d’une nation. Quand ma liberté vient menacer celle des autres, je deviens un irresponsable. Un irresponsable n’est plus un citoyen ».  

나는 프랑스인을 귀찮게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백신 미접종자, 정말로 그들을 성가시게 하고 싶다. antivax는 도덕적으로 대단히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가의 연대를 전복시킨다.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협하면, 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된다. 무책임한 사람은 더 이상 시민이 아니다.  



가만히 있을 프랑스 사람들이 아니지.

청소년은 백신 전선을 화나게 할 것이다. (c) AFP

 

마크롱을 화나게 만들자! REUTERS/Stephane Mahe

 

민중이 마크롱을 화나게 만들 것이다. 



마크롱의 말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개인에 달려 있다. 동의하지 않는 나에게 마크롱의 이 자극적인 발언은 젊은 엘리트주의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명예 프랑스인으로 마크롱을 나의 대통령으로 여긴 것에 따른 충격도 있었지만 이건 좀 웃자고 한 말이고 그보다도 프랑스 땅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조국의 공관보다 프랑스 정부가 더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외국인이지만 프랑스의 똘레랑스와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이 말은 이제 나는 그런 사회의 보호망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처럼 들렸고 진심으로 무서울 정도로 섬찟했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이어 다음 대통령이 되어야 할까? 마크롱의 상대로 거론되는 후보들은 2017년에도 맞붙은 르펜과 멜랑숑, 그리고 재선한 파리 시장 이달고 등 (마크롱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하니 백신 패스가 해제되지 않는 이상 다시 프랑스에 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또 다른 빌런 에리크 제무르가 등장했다. 언론인 출신인 그는 르펜의 국민연합보다 더 극우라고 여겨지며 역시나 트럼프처럼 그의 혐오 발언과 기행에 초점이 맞춰진 비판적 여론이 대부분이다. 몇 달 전 만난 프랑스 친구는 제무르를 가리켜 르펜이나 멜랑숑과는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그들보다 더한 노답 후보자라고 하고 후보자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는 세간의 평가대로 진짜 빌런일까? 제무르는 2014년 출판된 '프랑스의 자살(Le Suicide Français)'이라는 책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는 이 책에서 '68 혁명'의 '조롱, 해체, 파괴'의 영향으로 프랑스의 가치관과 규범이 점진적으로 해체되어 '프랑스적인 것'이 없어졌고 결국 프랑스가 자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메시지를 담았고 '프랑스의 자살'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제무르 유세현장. 근데 저기 왜 조아킴 손포르제 의원이 있지. 마크롱당 소속이었는데. 조아킴 의원도 친절하게 맞아준 분 중 하나. 무엇보다 답장이 빨라서 좋았다. AP/연합

 



갑자기 제무르의 공약이 궁금해졌다. 프랑스 국민으로서 상식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그의 도발은 분명 대선 공약에도 드러날 텐데. 제무르의 공약을 살펴보는 중에, 역시 나도 모르게 Immigration(이민)에 가장 먼저 손이 갔다. 사실 프랑스에서 나의 딜레마는 이랬다. 난민과 불법체류자까지도 포용하는 프랑스의 관용 정신 덕분에 외국인인 나도 프랑스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았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생존' 문제는 나 역시 난민이나 불법체류자를 불편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물론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학생과 외국인 근로자와 불법체류자와의 대우는 당연히 다르지만 외국인으로 인한 문제가 많아질수록 결국 비난의 화살은 프랑스에 사는 모든 외국인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이런 이중적인 마음이었지만 나는 합법적 체류자이니까 어쨌든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무르의 정책은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세부적으로 자세히 살펴봐야 하겠지만 나를 놀라게 만든 정책은

  • Mettre fin au regroupement familial
  • Mieux sélecionner les étudiants étrangers
  • Supprimer les aides sociales aux étrangers extra-européens


첫 번째는 가족 체류증 없애기, 두 번째는 외국인 유학생 선별해서 뽑기, 세 번째는 유럽 외 외국인한테 주던 사회 보장 제도 폐지.. 그밖에도 출생지주의(어차피 미국처럼 태어나자마자 바로 주는 건 아닌데...) 폐지나 귀화 조건 대폭 강화 등의 정책도.. 합법이고 불법이고 이민자는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는 거잖아.

이민자의 눈을 잠시 벗어놓고 보면 끌릴 만한 제무르의 공약도 꽤 있다.

  • 미성년자 처벌 나이를 현행 18세에서 16세로 낮추기
  • 현재 구금되어 있는 1만 명 이상의 외국인 범죄자 즉시 추방
  • 초등학교 기본 지식 교육에 재초점 : 읽기, 쓰기, 계산
  • 지하드 홍보하는 장소 영구 폐쇄 보장
  • 무슬림 형제단 금지
  • 각종 세금 낮춰줌


특이점이 온 몇몇 공약은

  • 중학생이 그리스어와 라틴어 교육 과정 따를 수 있도록 허용 ?-?
  • 범죄 저지른 미성년자 부모에게 복지 중단
  • 4g 및 고속 인터넷망 가속화 (한국은 5g인데...)
  • 국도 속도 제한 90km/h로 되돌려놓기

등등



여기서 또 나의 딜레마가 발동하지만 역시 나는 이민자니까 내 체류증을 빼앗는 정책에는 동의할 수 없겠다... 그러나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이 동의하든 말든, 다소 극단적이긴 해도 불법체류자를 전부 내쫓고 난민을 제한해 프랑스를 재정복(이슬람으로부터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스페인의 레콩키스타에서 유래한 제무르의 재정복(Reconquête)당)하자는 그의 공약은 프랑스 국민이라면 혹할 만한 것이기 때문에 그가 되어도 누가 뭐라 할 수 있으랴. 제무르가 당선 될 일은 없겠지만(설마?!) Z 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가 열성적으로 제무르를 지지하고 있는 현상은 현재 프랑스 대선 정국뿐만 아니라 비슷한 한국의 상황을 읽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제무르의 책도 마찬가지다. 속으로는 인종차별을 할 지라도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며 절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이 극우 성향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오죽하면 르펜과 제무르를 지지할까. 무엇이 그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까. 물론 책의 모든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프랑스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한국에서도 참고할만한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제무르의 이민 정책 전문  https://programme.zemmour2022.fr/immigration

 

 




마침 오늘 한 영상을 보았다. 어떤 영국 교민의 이야기로 영국에서 평등법이 시행될 때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인종차별 반대는 외국인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내 딜레마도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아무튼 프랑스 정치에 대한 글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마치 사법고시로 입신양명한 사법고시 출신이 사법고시를 폐지한 것처럼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해 대통령이 된 마크롱의 국립행정학교 폐지, 이민자 출신임에도 이민자에게 빡빡한 (사르코지와) 제무르. 만국 공통적 정치인의 내로남불은 차치하고서라도, 프랑스 언론이나 프랑스 국민들은 프랑스 정치인의 성 스캔들에 유독 관대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의 숨겨진 딸, 사르코지의 세 번째 결혼, 동거인과의 사이에서 애가 넷인 올랑드의 외도, 친구 엄마였던 마크롱의 부인, 그리고 20대 보좌관과 불륜 사진이 찍힌 애가 셋인 60대 제무르까지... 하나하나 열거해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프랑스인 대부분은 사생활에 신경 쓰지 않는다(다만 금전 스캔들에는 엄격하다). 이런 프랑스의 유명한 전통(?)이 다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최근 한국에서 비슷한 스캔들이 터졌을 때였다. 이제 한국도 프랑스처럼 정치인의 사생활에 관심 갖지 않으면 안 되냐고 누군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그 말에 반박하기 위해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막 찾아보았다. 하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가 그러든지 말든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 우리는 서구는 무조건 앞서 있으며 서구의 것은 좋은 것이라 우리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할까? 애초에 프랑스가 잘못된 것인데. 공적인 능력을 떠나 가정이 있는 친구 엄마와 불륜은 잘못되었고, 가정이 있는 상태에서 그 여자가 나이가 많든 젊든 다른 여자와의 외도는 잘못되었다. 우리는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덕적 가치가 흔들리는 세상이 문제일까, 아니면 선택적 취사가 문제인 것일까? 이전에는 혹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서구의 것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절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제무르가 말한 프랑스의 자살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30년을 서양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가 최근에 막 탈출한 내가 이 점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




P.S.1
재미있는 선거 사진.
집 앞 벽보였는데 이렇게 낙서가 되어서 촬영 소재로 사용되었다. Raciste(인종차별주의자)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있다. 정치인의 내로남불이 만국공통이라면, 안티의 낙서도 이에 김낀 것처럼 검은칠 해놓고 눈알부터 파는 게 만국공통 국룰. ㅗ와 나치 문양은 덤. 





P.S.2
재미있는 선거 사진.
투표권 없는 étranger-외국인의 절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