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제 전 세계의 이목은 우크라이나에 쏠리고 있다. 러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러시아의 수도도 전운이 감돌 텐데 평화로워 보였던 모스크바에서의 지난여름이 꿈같기만 하다. 하지만 나의 감정적인 회고와는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지금 이 시간은 현재 진행형인 전쟁이다. 하필 대선 기간과 맞물려, 특히 외교, 안보 정책 토론과 맞물려 전쟁이 일어났고, 그렇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대선 후보들의 시각을 살펴보는 것도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 우크라이나 현재 상황,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서방 국가의 입장, 한국 정부의 입장 등등 수많은 기사가 수없이 쏟아져 내리는 이 시간, 눈을 사로잡는 제목의 한 칼럼을 보았다.
정권 인사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크라 조롱...그 입 다물라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10&oid=025&aid=0003176369
전쟁의 탓을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가의 무능으로 돌리며 전쟁당한 나라를 조롱하는 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의 글이었다. 단어 하나도 조심해서 써야 하는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왜 이런 행태를 보일까. 칼럼니스트의 분석은 이랬다.
586 세대, 더 나아가 진보 진영 일각에 팽배한 예능인 혐오와
개발도상국 멸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라고 본다.
조금 더 칼럼의 글을 덧붙이자면,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을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무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건국 이후 30년간 얽히고설킨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치 신예를 지지해 단번에 정치적 구도를 흔들고자 함이었다(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코미디언이지만 법학 석사 출신이라고 한다). 마치 2017년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금융 엘리트 마크롱이 갑자기 튀어나와 대통령이 된 것처럼.
개발도상국 멸시... 나는 이 기사를 읽고 20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난 한국인 관광객 유람선 침몰 사고가 생각났다. 프레스 배지를 달고 언론인으로 일을 하면 평소 가기 힘든 곳,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 등 평소 누리기 힘든 특권을 누릴 수가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세상만사는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유럽에서 연이어 터진 테러, 런던 화재, 그리고 부다페스트의 유람선 침몰...(후임은 이번에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간다고 한다..) 취재가 필요한 곳이면 꼭 가야 했고 사건이 터져서 취재를 하고,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출장 일수가 늘어날수록 돈을 버는 아이러니함은 언론인의 사명과 숙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사건의 현장은 언제나 숙연하지만, 한국인들의 사고가 났던 부다페스트는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구소련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던 시간이었다. 다음에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텐데, 체코에서 겪은 불친절함 때문에 구소련 나라의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헝가리 사람들은... 친절했다. 친절을 넘어서 그들은 진심으로 애도하고 추모해주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신들의 애도하는 진심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강 옆을 떠나지 못하는 유족들의 옆에서 지켜주었고 한국 사람들에게 물과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왜 이 두 사건이 연결되었냐고? 단순히 둘 다 구소련의 동유럽 국가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 당시 헝가리가 후진국이라서 수색 작업이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현장에서 마주친 헝가리의 노력과 헌신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나,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평하는 의견이 나오게 된 이유와 배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알 수가 없다. 추측은 갈지언정 이건 내 전공이 아니니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인식에 대해서 서글픈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젠더 감수성,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감수성은 어디다 팔아먹은 것일까? 이것도 선택적 취사의 일환인 것일까, 온갖 정치적 올바름으로 떡칠된 넷플릭스의 한 영국 드라마에서 노골적으로 아시아를 차별했듯이.
맨 위 칼럼을 쓴 칼럼니스트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칼럼은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있다.
입으로는 온갖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와 멸시를 드러내는 사람들 아닌가. 침략당한 외국을 두고 선거용 견강부회를 위해 그런 혐오 발언을 하는 걸 보면 너무 끔찍해서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모든 한국인이 그렇지 않다는 걸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된 주권국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프랑스 이야기 Histoire de la Fr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와 아를르캥& 피에로 - <한자와 나오키 : 아를르캥과 어릿광대> (0) | 2022.05.04 |
---|---|
러시아가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으려면 - 러시아 건축과 러시아 공공주택 이야기 (0) | 2022.04.11 |
설날이 중국의 '소프트파워' 도구가 될 때 - 부드럽지만 강력한 문화, 그리고 문화 침탈 (0) | 2022.02.13 |
'자살당한 프랑스'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 프랑스(와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0) | 2022.02.07 |
그냥 좋아하는 거 하면 안 될까? - '우연히 웨스 앤더슨'에서 다시 만난 숨겨 왔던 나의~ 취향 (0) | 2022.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