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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문화유산정책 Politique européenne

나의 유럽문화유산 답사기

RAPHA Archives 2020. 8. 27. 12:13

+) 이것도 학생 모임에서 썼던 글.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패러디 or 오마쥬 (라고 하기엔 읽어보지 않았..) 이다. 매년 빠지지 않고 가서 그런가 올해 9월에 한국에 갈 생각을 하니 가장 아쉬운 게 바로 문화유산의 날에 못 가는 것이었다. 근데 갈 수 있게 될 듯....... 올해는 어디를 가면 좋을까나. 

+) 올해는 결국 못 간댜.. 하하하 내년에 보자아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파리에서는 매년 매달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가 열린다. 10월에 열리는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피악 (FIAC, Foire International de l’Art Contemporain), 마찬가지로 10월에 열리는 뉘 블랑쉬 (Nuit blanche), 5월의 밤을 수놓는 유럽 박물관의 밤 (Nuit européenne des Musées), 6월의 음악 축제 (Fête de la Musique), 그리고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 등등. 이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 있다. 매년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올해는 어디에 갈까 들뜬 마음으로 카탈로그를 뒤적이게 하는 날. 바로 유럽 문화유산의 날 (Journée européenne du patrimoine)이다. 유럽이라는 말을 달고 있지만 문화유산의 날은 프랑스로부터 시작되었다. 1984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 (Jack Lang)은 9월의 세 번째 일요일을 역사 기념물 공개의 날 (Journée portes ouvertes dans les monuments historiques)로 지정하였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을 시작으로 1991년 유럽 평의회는 공식적으로 유럽 문화유산의 날을 제정하여 올해 35번째의 날을 맞게 되었다.

 

 

유럽 문화유산의 날 로고 출처 :   https://ec.europa.eu/programmes/creative-europe/news/20160915-european-heritage-days-2016_en

 

 

 

 

 

 

이 날이 특별한 이유는 다름 아닌 개방성에 있다. 평소에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는 많은 유적들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 (Palais d’Elysée)이나 총리 관저 오뗼 드 마티뇽 (Hôtel de Matignon), 상, 하원 의사당으로 사용되는 뤽상부르 궁 (Palais du Luxembourg) 과 부르봉 궁 (Palais Bourbon) 등에는 아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역사와 예술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1995년부터는 매년 특별한 주제를 선정하여 자칫 매년 똑같을 수 있는 행사에 방문자들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3년간을 살펴보자면, 2016년 문화유산과 시민의식 (Patrimoine et Citoyenneté), 2017년 청소년과 문화유산 (Jeunesse et Patrimoine), 그리고 2018년 문화 전통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유럽 시민의 공통의 가치를 기리는 공유의 예술 (L’art du partage)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휴전 협정 100주년과 위대한 문화유산의 유럽의 건설을 기념하기 위해 2018년도에 이 주제가 선정되었다.

 

 

 

2020년 유럽 문화유산의 날 포스터 (출처 : https://journeesdupatrimoine.culture.gouv.fr/)

 

나는 프랑스에 도착한 2013년 9월부터 매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곳이라도 방문하고자 하였다. 보통 1년 단위의 체류증을 받기 때문에 프랑스 생활을 1년 살이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9월의 학기 시작과 더불어 매년 유럽 문화유산의 날을 맞게 되면 프랑스에서 1년을 또 잘 버텨 왔구나, 앞으로의 1년도 잘 버텨보자,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그만큼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날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 가든지 항상 느꼈던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상관없이 이 날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젊은이들만을 위한 행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들만의 행사도 아닌, 프랑스 국민이면 누구나 (그리고 당연히 외국인까지도) 향유할 수 있는 문화행사이다. 파리 역사 도서관 안에 있는 파리의 고지도 앞에 삼삼오오 모여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몇 백 년 전의 파리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수많은 문화유산에 둘러싸여 역사를 배우고 또 그것을 전수하며 역사를 지켜나가는 프랑스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한국의 풍경이 떠올라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6년간 내가 방문했던 곳들은 이렇다. 에꼴 드 낭시 박물관 (Musée de l’Ecole de Nancy), 하원 의사당 부르봉 궁 (Palais Bourbon), 프랑스 외무부, 오뗄 드 마티뇽 (Hôtel de Matignon), 프랑스 은행 (Banque de France), 엘리제 궁 (Palais d’Elysée), OECD 본부, 국립 해양 박물관 (Musée national de la marine), 국립기록보관소 (Archives Nationales), 프랑스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 (Hector Guimard)가 지은 오뗄 메짜라 (Hôtel Mezzara), 그리고 파리 역사 도서관 (Bibliothèque historique de la ville de Paris)까지. 각 건물 모두 자신의 역사와 건축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는 곳은 바로 엘리제 궁!

 

 

 

이미 몇 년 전에 엘리제 궁을 방문해서 올랑드 전 대통령의 사진도 찍은 적이 있는 친구는 엘리제 궁 입장의 위험성(?)을 경고 했었다. 새벽부터 줄을 서도 못 들어간다느니... 이런저런 카더라도 많이 들렸다. 그래도 딱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어서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도저히 언제 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황금 같은 주말 아침, 일어날 수 있는 최대한 이른 시간에 일어나 엘리제 궁 앞에 도착했다. 아침 8시. 이미 줄은 엘리제 궁을 넘어서 샹젤리제를 지나 콩코드까지 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최대한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대통령 궁은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더 이상 줄을 받지 않았다.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을 터.. 그 후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학창시절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 놀이기구 타겠다고 2-3시간 줄 선 이후로 오랜만에 본격적인 줄 서기를 했던 것 같다. 1시간 2시간 3시간... 줄을 줄어들지 않고 엘리제 궁도 보이지 않았다. 앞뒤로 꽉 막혀있어 중간에 포기하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4시간 5시간.. 드디어 엘리제 궁이 보였다. 정문을 들어가 보안대를 통과했지만 그 안에도 줄이 늘어서있다. 결국 줄을 서기 시작한 지 6시간이 지나서야 엘리제 궁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놀이공원 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포기하고 싶어도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꼼짝없이 줄 서기 지옥에 갇힌 것만 같다.

 

 

 

 

 

 

 

이제야 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원한다면 중도 하차 할 수도 있는데,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저기 정문이 보인다.

 

 

 

바로 눈 앞에 정문이 보인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서는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꼬이고 꼬인 줄들을 모두 지나쳐야 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Anne-Christine POUJOULAT / POOL / AFP (출처 : https://actu.orange.fr/france/journees-europeennes-du-patrimoine-huit-heures-d-attente-devant-l-elysee-magic-CNT0000016yNpG.html)

 

 

 

이렇게 정원에 있는 줄을 또 거쳐..... (출처 : https://fr-fr.facebook.com/elysee.fr/posts/10156617744195350)

 

 

 

 

이제 진짜로 엘리제 궁 입구에 다다르게 되었다! 드디어 들어갈 수가 있다. (출처 : http://www.leparisien.fr/culture-loisirs/journees-du-patrimoine-2017-reservez-vos-visites-29-08-2017-7221249.php)

 

 

 

 

 

지금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의 본사가 있고 프랑스에서 가장 럭셔리한 거리 중 하나인 샹젤리제 거리와 포부르 생토노레 (faubourg Saint-Honoré) 거리는 엘리제궁이 지어진 18세기 때만 해도 드넓은 벌판이었다. 그곳에 건축가 아르망 클로드 몰레 (Armand-Claude Mollet)는 에브뢰 백작 (comte d’Evreux)의 저택을 짓기 시작하였다. 공사는 1718년 시작하여 1722년에 끝났다. 이것이 엘리제 궁의 첫 시작이었다. 1753년 루이 15세는 자신의 애첩인 마담 퐁파두르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저택을 사들인다. 그녀의 흔적은 살롱 퐁파두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엘리제 궁에 남아있다. 그 후 루이 16세, 그의 사촌인 부르봉 공작부인 (duchesse de Bourbon)을 거친 엘리제 궁은 다른 귀족 저택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혁명 때 인쇄소, 망명 귀족으로부터 빼앗은 가구를 보관하는 창고 등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겪었다. 1848년이 되어서야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로 국민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Louis Napoléon Bonaparte) 가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이곳에 머물기 시작했으나 그가 나폴레옹 3세로서 제정을 시작하게 되자 튈르리 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프랑스에 공화국이 다시 들어서고 1873년 마크 마옹 장군 (Patrice de Mac Mahon)이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1874년부터 지금까지 엘리제 궁은 공식적인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며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이 되었다.

 

 

 

18세기 중엽의 엘리제 궁 정원의 모습 (출처 : BNF)

 

 

 

엘리제 궁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뛰어난 고전 양식 건축 중 하나이다. 쿠르 도뇌르 (cours d’honneur : 서양의 궁전이나 저택에 있어서 건물이나 안뜰 중 가장 격식이 높은 것. 통상 쿠르 드 로지와 정문 사이에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미술대사전(용어편)) 와 정원의 한 축에 자리 잡고 있는 현관, 이중으로 된 코르 드 로지 (corps de logis : 서양의 저택(邱毛)건축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건물 또는 건물의 부분. 본체라고도 함. 본체에 연속되어 있지만 이보다 낮거나, 혹은 그와 같은 높이라도 그 끝부분이 본체와 직교(直交)하는 종속적인 위치에 놓인 건물의 부분, 즉 익옥(翼屋, 좌우팔방으로 뻗은 집, wing[영], aile[프], Flugel[독])과 구별할 때 쓰인다 - 네이버 백과사전 미술대사전(용어편)), 정원을 면하고 있는 그랜드 살롱을 중간에 공유하면서 메인 건물의 1층에 위치한 대접견실 등이 그것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엘리제 궁의 모습. 현관과 쿠르 도뇌르, 정원이 한 축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출처 : https://www.marieclaire.fr/maison/deco-a-l-elysee,200317,1161665.asp)

 

 

 

엘리제 궁의 메인은 단연 실제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방인 살롱 도레 (Salon doré) 일 것이다. 이 방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외제니 황후의 화가이자 장식가인 장 루이 고동 (Jean-Louis Godon)의 장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764년 고블랭에서 만든 태피스트리와 루이 14세 때 사본느리에서 만든 카펫과 더불어 천장에는 무려 크리스털과 금박을 입힌 청동으로 제작된 56개의 초가 빛나는 나폴레옹 3세의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살롱 도레 (Salon doré) 이때는 올랑드 방이었는데, 지금은 마크롱 방이다 'ㅁ'

 

 

 

 

장장 6시간의 기다림은 단 1시간 만에 막이 내렸다. 결국 봤다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했다. 건축문화유산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궁전이나 옛 귀족 저택을 방문하면 사실 비슷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한국에서 유럽을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지만 파리에 있다 보면 완전히 다른 양식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쩔 때는 아무 감흥이 없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건축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왜 꼭 그 건물을 방문해야만 할까? 그것은 바로 건축물 속에 숨겨진 이야기 때문이다. 이곳이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이 살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곳이 프랑스 상, 하원 의사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건축물이 현재의 그 기능을 하기까지 건축가에서부터 첫 소유주, 이후 건물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그 건축물에 담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긴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에 누구나 역사와 문화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여기며 마땅히 문화유산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의 신념과 누구보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알고자 원하는 국민들까지. 프랑스의 유럽 문화유산의 날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참고자료

 

http://www.elysee.fr/

https://journeesdupatrimoine.culture.gouv.fr/

Le Palais de l’Elysée, Collection Prestige, 2013

Georges Poisson, Histoire de l’architecture à Paris, Paris,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