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인스타 피드를 휙휙 뒤적이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자주 이용했던 라탕 지구의 중고 서점 지베르 죈느(Gibert Jeune)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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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i Saint-Michel의 부키니스트이자 생테티엔의 생 미셸 중학교에서 고전 문학 선생님이었던 조제프 지베르(Joseph Gibert)는 파리에 온 지 2년 뒤인 1888년 Boulevard Saint-Michel에 서점을 열었다. 당시에는 쥘 페리(Jules Ferry)가 무료 교육을 의무화한 바로 그 순간이었기 때문에 학교는 번영하고 있었고, 조제프 지베르 서점은 중고 교과서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상점이 되었다. 1915년 지베르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서점을 경영했다.
그리고 1929년 맏형인 조제프가 현재 문구점인 30 boulevard Saint-Michel에 자신의 서점을 열었다. 그의 동생인 헤지스는 quai Saint-Michel을 운영했는데 지베르 죈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후 지베르 죈느는 Place Saint-Michel을 중심으로 여러 층으로 매장을 확장하며 다른 주소에 새로운 공간을 열었다. 지베르 조셉은 프랑스 전역에 서점 네트워크를 구축하였고 음반 및 비디오까지 판매 영역까지 확장하였다. 분리되었던 두 서점은 2017년 재정적 문제로 다시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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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책값은 비싸서 문고판이나 중고책을 매우 애용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책이 중고서점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중고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보물찾기 하는 기분.
그래서 그 동네를 갈 때면 지베르 죈느는 한 번씩은 꼭 들러야 했던 곳이었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다양한 주제의 책들만 보고 있기만 해도 좋은 곳이었다. 아울러 정말 별별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는 프랑스의 출판 다양성에 대해서 감탄하던, 그러면서 내가 번역하고 싶은 책들을 줄줄이 발굴하던 그런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베르 죈느가 폐업했다는 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프랑스인들의 충격도 상당한 지 르 파리지앵(Le Parisien)의 기사에서는 폐업 소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Gibert s'en est allé sur la pointe des pieds. A la sortie du métro, la place Saint-Michel (Ve) paraît bien triste et désolée en ce mardi. Fini la foule, bouillonnante, qui se pressait chez Gibert Jeune et ressortait munie des fameux sacs jaune et noir. Le vaisseau amiral de la librairie, devenu au fil des décennies le cœur battant, certes un peu vieillissant, du quartier Latin n'est plus. Le rideau métallique est baissé depuis le 19 mars et ne remontera plus jamais, comme l'annonce, laconique, la pancarte scotchée sur la vitrine : « fermeture définitive ». Dont acte. On le savait, mais le voir fait un pincement au cœur.
지베르는 조용히 떠났다. 지하철 출구에 있는 생미셸(5구) 광장은 오늘따라 매우 슬프고 황량해 보인다.
지베르 죈느에 몰려들어 그 유명한 노랗고 검은 봉투를 들고 나오는 바글바글한 군중은 사라졌다.
물론 좀 오래되긴 했지만 수십 년 동안 라탕 지구의 심장을 뛰게 했던 서점의 기함(旗艦)은 더 이상 없다.
3월 19일 이후로 내려간 굳게 닫한 셔터는 다시는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간략하게 발표한 대로 '최종 폐업'이라는 게시판이 유리창에 테이프로 붙어 있다.
법적으로 증명되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보게 되니 가슴이 아프다.
안 그래도 올 3월 온라인으로 책을 시키려고 했는데 전부 다 주문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저 책이 없었겠거니 하고 아마존으로 주문했는데,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점이 없어서였다.
2020년 1월, 체류증하러 경시청 갔다가 근처에 왔으니 서점 한 번 들러야지 했던 게 파리에서 애정 하던 장소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아마도 코로나 때문인 것 같지만, 이미 지베르 죈느는 약해지고 있었다. 노란 조끼 시위, 파업, 생 미셸 역 폐쇄로 이어지는 RER C 공사, 노트르담 화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로나로 인해 텅 비어버린 라탕 지구까지.
한국과는 다르게 파리의 큰 특색 중 하나라면 10년 전 갔던 파리나 20년 전 갔던 파리나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점인데
이렇게 파리에서의 추억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가 바꿔버린 풍경은, 그리고 앞으로도 바꿔버릴 풍경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몇 년을 애태웠던 사마리텐이 부활했다고 하니, 그것으로라도 내 마음을 달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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