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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거리 이름에 숨겨진 비밀

RAPHA Archives 2021. 7. 24. 02:35

계획도시 파리는 길 찾기가 매우 쉬운 곳이다.
한국도 도로명 주소로 바뀐 지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도로명 주소로 길을 찾는 건 꽤 어려운 일인데
파리는 지도만 있으면 길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에도 지도 한 장 들고서 잘만 걸어 다녔던 파리 시내.

그렇기 때문에 파리 시내는 온종일 걸어 다녀도 지루하지가 않은데 (심지어 재밌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파리 시내 거리를 밝히는 거리의 이름들.

지리에 얽힌 유명 인사들의 이름, 건물과 관련된 이름, 특별한 날짜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한 이름 등등
왜 이 이름이 여기에 붙었는지 나름 추리해보며
파리 거리 이름만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꽤나 멋진 여행 코스가 될 정도니까.


파리 거리 이름과 관련된 촬영을 하는 중에
당시 이슬람 추종자가 벌인 인질극으로 인해 여성 인질 대신 희생된 아르노 벨트람 중령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길 이름을 바꾼다고 하는 것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루이 14세 동상이 있는 place des victoires의 rond point을 중심으로 난 길 중 Rue Vide Gousset에서 인터뷰할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보통 촬영을 할 때에는 정보를 찾거나 또는 통역을 하거나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는데
그때는 길 이름 검색하랴, 길 이름에 대한 유래 검색하랴, 인터뷰할 사람 찾느랴, 인터뷰하랴
유독 정신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 길에 서서 실시간으로 길 이름의 역사를 찾았었는데
실제 길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앙시앙 레짐 하에 이 지역에서 일어난 수많은 절도 사건 때문에
루이 15세의 재무 장관에 항의하기 위해 Vide-Gousset(소매치기라는 뜻의 옛 단어)로 이름 변경한 것.

source : https://fr.wikipedia.org/wiki/Rue_Vide-Gousset#/media/Fichier:P1260811_Paris_II_rue_Vide-Gousset_plaques_rwk.jpg



참고로 주요 주제는, 파리 18구에는 프랑스의 유명 작가 보리스 비앙(Boris Vian)의 이름을 딴 길이 있는데
그 길이 너무 더러워서 작가의 유족들이 거리 정비를 요청했는데도 달라지는 것이 없자 아예 길 이름에서 작가의 이름을 빼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게 3년 전 일인데 지금 찾아보니 길 이름이 바뀐 건 아닌 듯하다.
다만 약 1달 전, 그 구역 일대를 재정비하는 프로젝트를 파리 시에서 소개하고 있는 걸 보니
재정비라도 할 모양인가 보다. 그러게 진작 했었어야지~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아르노 벨트람 중령의 이름을 딴 거리는 어디에 생겼을까?
프랑스 전역에 엄청 많이 생겼는데 파리에서만 보자면
avenue de la Porte-de-Sèvres 이름이 > avenue du Colonel-Arnaud-Beltrame으로 (국방부가 가까워서) 변경되었고
3구에 Jardin Arnaud Beltrame과 Allée Arnaud-Beltrame 이 생겼다.

그런데
최근 이 벨트람 중령 정원(Jardin Arnaud Beltrame)이 문을 열면서 정원 이름을 새긴 현판이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파리 길 명패는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보통 길 이름이 쓰여 있고, 길 이름이 인물에서 따온 거면 그 사람의 탄생연도와 사망연도 정도가 쓰여 있고
중요하거나 기념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관련 인물의 정보가 써 있기도 하다. 바로 이렇게~

© Jean-Baptiste Gurliat / Ville de Paris


벨트람 중령 정원에도 당연히 관련 정보가 써 있었는데...
논란은 다음과 같은 문구 때문이었다..
'Victime de son héroïsme'
무슨 뜻이냐면 자신의 영웅심, 영웅주의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
OMG

© Capture d'écran Twitter 트위터 캡쳐 


이 논란은 한 트위터 사용자가 현판 사진을 캡처해서 올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어 네티즌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에게까지 번졌다.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이름 언제 바뀐 거지....) 대표 마린 르펜(Marine Le Pen), 마크롱 대통령의 당 LREM의 부의장 오로르 베르제(Aurore Bergé), 테러 분석 센터장(Centre d'Analyse du Terrorisme) 장 샤를 브리자르(Jean-Charles Brisard)는 이런 파리 시의 행태를 비난하고 나섰다. 파리 시는 현판에 작성된 내용은 가족이 검증했고 현판식에 벨트람 중령의 어머니와 파리 시장이 함께 있었다고 변명했다.

벨트람 중령 추도식 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직접 수여하는 마크롱 대통령 © PHILIPPE LOPEZ / AFP/LOPEZ


이 이야기를 다룬 르 피가로의 기사 말미에는 같이 읽을만한 기사로 2018년 3월 28일 마크롱 대통령이 아르노 벨트람 중령을 기린다는 기사 제목이 뜨고 관련 영상이 재생된다. 3년도 더 전의 기사인데, 괜히 그 기사 링크를 덧붙인 건 아닐 것이다.

뭐 어찌되었든 파리 시장은 대통령과는 다른 당 소속인데,
이런 논란 거리나 또 변명하는 거나 (최근 들어 특히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건 그냥 기분 탓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