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보물상자를 연 것 같았다.
그 상자에는 10년, 20년, 3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모든 것들이 전부 다 버릴 것 없는 추억이었는데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던 건
프랑스어 사전들.
그냥 사전도 아닌, 프랑스 갈 때마다 모으던, 또 이탈리아 사이트에서 직접 직구한 사전들
달프 시험에서 유일하게 허용해줬던 (미니) 불불 사전
영어를 바탕으로 프랑스어 공부하겠다고 산 영불 사전
상동의 이유로 구매한 영어로 배우는 프랑스어 교재
학교 다닐 때부터 진짜 유용하게 쓰던 꽁쥬게종(동사변화) 사전
스페인어 배우겠다고 구매한 불서 사전
상동의 이유로(그래도 이탈리아어는 진짜 배움) 이탈리아 사이트에서 어렵게 직구한(직구의 개념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을 때...) 불이사전...
하나하나 모으던 시절에는
소중한 자산이고 물 건너온 귀한 것들이었는데
1년, 2년도 아니고 10년이 넘게 봉인되었다가
갑자기 마주친 그대들은...
인테리어 소품용 원서 모형 책 마냥...
사실 얘네가 10년 동안 봉인된 이유는
프랑스 갈 때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인데
내가 마지막으로 프랑스에 가기 전부터
전자사전이 있어서 이미 종이사전을 잘 쓰지 않았다.
학교에서 시험 볼 때 전자사전 못 쓰게 해서
종이사전이 필요한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때부터 벌써 종이사전은
혹시나 해서 챙기긴 했지만
있는 거 없는 거 다 챙겨 넣어야 했던 짐만 차지하던,
그런 계륵 같던 존재
지금은 앱에서 클릭 한 번이면
단어가 쫘라락 나오고
구글 번역은 특히 유럽어끼리는 1초 만에 번역이 된다.
심지어 내가 요새 맡은 사업은
AI 관련..
AI 가 우선이고 사람은 서브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이렇게 사람도 설 자리를 잃어가는데
종이사전이야 말해 뭐해...
사실 지금이야 이 모든 게 당연하지만
이렇게 유물을 마주 보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고
거기다 코로나19라는 사태 이후
예측조차 하기 힘든 세상이 돼버린 것 같다.
기계는 인간을 따라올 수 없고
아무리 디지털이다 뭐다 해도
기본과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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