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외국어 공부의 역사 3 - 불문과의 추억

불문과에는 약 3가지 학생 유형이 있었다.
1. 외고 프랑스어, 제2외국어 프랑스어, 프랑스어권 재외국민 전형 출신들
프랑스어를 좋아해서 오거나,
프랑스어가 익숙해서 오거나
아니면 진짜 잘해서
2. 당시 우리는 인문계열로 학생을 뽑았고, 2학년 때부터 과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문과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는 영문, 심리, 국문 등으로
인기 학과를 가지 못해서 차선책으로 불문과에 온 학생들
또는 이와 유사한 유형으로
프랑스어권 재외국민 전형 출신은 아니지만 일본, 스페인어권 출신으로
우리 학교에는 일문과랑 서문과가 없어서 그나마 비슷한(?) 불문과로 온 게 아닐까 생각되는 학생들
3. 나같이 진짜 불문과 오고 싶어서 온 학생들
1번 유형은 3번 유형에 속하기도 한다.

나는 원래 우리 학교 불문과에 가고 싶었고
완전 고생 끝에 들어가게 된 케이스라
학교와 학과가 정말 좋았다.
그래서 다른 학과에 대한 미련이나 부러움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부러웠던 점은 딱 하나.

그건 바로 대학생의 로망, 원서...
(왜 그렇게 원서를 모으는지 그 이유가 여기서 나타난다)

학잠, 과잠을 입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문과대 내 최고 인기 학과인 영문과 학생들은
본인이 영문과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한 손에는 영문학 교재, 한 손에는 학교 파일을 들고
교내를 활보했다.
그 책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맨큐의 경제학과 함께... )

영문과 학생들이 들고 다니던 영문과 원서. 21년도에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고전을 배우는 고전

반면에 우리는 ...
교내 인쇄소에서 제본한 책들.. 이런 거..

표지에 그림이 없으니까
내가 그려 넣었다.
지금 봐도 참 잘 그린 것 같다.

그치만 교재는 이래 봬도 진짜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는 안 하고 그림만 그렸는데도...?)


학과에는 외고 프랑스어과, 프랑스어권 재외국민 출신이 많았고,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한 학생들까지 합치면
프랑스어 알파벳과 기본 구조는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같이 대학 입학해서 프랑스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이 수업을 따라가는 건 좀 힘들었다.
독일어를 배워서 동사 변화나 성수에는 익숙하기도 했고,
기초 불어 수업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서 내가 선택한 공부법은
모조리 암기..
원래 암기력도 좋고 20대 초반의 싱싱한 두뇌도 한몫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아주 효과가 좋았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문법 연습 문제 답을 써주면
저렇게 교재에서 보이는 것처럼
전부 다 적고 한국어 문장-프랑스어 문장을 1대 1로 매칭 시켜서
달달 외웠다.
심지어 소설도 그렇게 공부했다.
이 문장 다음에는 이 문장이 자동으로 나올 정도로
그냥 무슨 뜻인지 몰라도 무조건 외웠다.

이 방법은 추후 프랑스 석사 때도 사용되었는데
그 방법인즉슨...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는 만능(?) 답변을 수업 교재 및 참고 문헌을 베이스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주야장천 그것만 외운다.
마치 인덱스카드 꺼내서 필요한 부분을 보는 것처럼
문제에 맞는 부분의 답을 꺼내서 쓸 수 있도록.

그러려면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소설의 한 부분이 문제로 나왔을 때,
그 문장에 대한 해석을 순서대로 줄줄이 쓸 수가 있고
(이다음에는 이 문장, 그다음에는 이 문장이 이렇게 자동으로)
프랑스 대학 문제도 그런 식으로 답을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것도 추억인 게
지금은 이런 공부법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아 세월이여ㅠ)
또 시험 볼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시험을 볼 일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공부는 평생 해야 하기에
이제는 무조건 암기만 하는 대신에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법을 좀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