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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승리를 기념하는 샹젤리제의 거대한 코끼리? - 개선문 시리즈 2

RAPHA Archives 2021. 9. 30. 00:14


포장된 개선문 문화유산적 관점으로 해부하기

https://youtu.be/WLbUOEeODII







아치 대신 코리끼가 포장될 뻔했던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개선문 포장 프로젝트에 이어 오늘은 프랑스의 전쟁과 승리를 기념하는 개선문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아치가 아닌 코끼리가 포장될 뻔했던 사연 ↴ ↴ ↴
https://rapha-archives.tistory.com/94

아치가 아닌 코끼리가 포장될 뻔했다 - 크리스토, 잔 클로드의 포장된 개선문

파리, 아니 파리를 넘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기념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노트르담, 사크레 쾨르, 에펠탑,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그리고 이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투알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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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로부터 영감을 받은 아치
코끼리 모양을 할 뻔 했던 개선문은 건축가 장 프랑수아 샬그랑(Jean-François Chalgrin) 고대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샬그랑은 루이 16세 치하에서 생 필립 뒤 룰(Saint-Philippe du Roule) 교회와 생 쉴피스(Saint-Sulpice) 북쪽 탑을 건설한 앙시앙 레짐의 건축가입니다. 개선문의 높이는 50m, 길이 44.8m, 폭은 22.2m의 대형 기념물입니다. 개선문의 트레이드 마크는 아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아치가 바로 고대 예술에서 받은 영감입니다. 아치의 중요성은 전쟁에 대한 고대 로마의 종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군사 작전이 끝나면 병사들을 도시 또는 포럼의 입구에 위치한 아치 모양의 마법의 문 아래로 지나가면서 그들이 가진 파괴적인 에너지를 방출하게 했습니다.

샬그랑의 파리 개선문 프로젝트(1810), 수채화 Ph. H. Josse © Archives Larbor



에뚜알 vs 바스티유
1806년 2월 18일 나폴레옹은 샹파니 내무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냅니다.
'바스티유가 있던 곳 근처의 대로(boulevard) 입구에 개선문을 세우게 되면 500,000 프랑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생 앙투안 지역에 들어갈 때 이 개선문 아래를 지나가게 됩니다.'

파리의 동쪽은 전통적으로 군대의 출발과 귀환 지점이었습니다. 서쪽으로 가는 길, 즉 영국으로 가는 길은 승리와는 인연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샹파니 장관과 샬그랑 건축가는 에뚜알의 교차로에 건설할 것을 청했습니다.
'개선문은 에뚜알 광장에서 가장 장엄하고 그림 같은 방식으로 튈르리 제국의 성의 절경을 담을 것입니다... 개선문은 파리로 들어오는 여행자의 감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비교할 수 없는 파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기억을 남길 것입니다... 폐하께서 말메종(Malmaison), 생제르맹(Saint-Germain), 생 클라우드(Saint-Cloud), 베르사유(Versailles)까지 가는 길이면 이 개선문을 건너실 것입니다.'

장관의 주장에 설득당한 나폴레옹은 에뚜알 광장에 개선문 건설을 명령했습니다.


돌에 새겨진 승리
승리를 거머쥔 대군에 대한 경의로, 알렉산드리아 함락, 마렝고 전투, 예나 전투, 바그람 전투 또는 아르콜 다리 전투와 같이 위대한 전투의 이름과 혁명과 제국의 승리의 장면이 위풍당당한 개선문 정면에 새겨졌습니다. 돌에 새겨진 위대한 프랑스군의 승리는 영원히 기억되어야 했습니다. 개선문의 네 기둥에 나타나는 660명의 인물들처럼 대부분 제1 공화국(1792-1804)과 제1제국(1804-1815)의 장군들입니다.


1920년부터 꺼지지 않는 무명용사의 불꽃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무명용사의 묘는 1920년 11월 11일 샹젤리제 거리를 마주한 중심 아치 아래 지하실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들은 무명이었지만 프랑스인으로 인정되며 역사 속에서 프랑스를 위해 희생된 모든 군인을 대표합니다. 불꽃은 기억을 기념합니다. 매일 저녁 18시 30분 참전 용사 또는 전쟁 희생자 연합이 불을 붙이며 1920년 이후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습니다.


아치 아래에서의 비행
1919년 8월 7일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조종사 샤를 고드프루아(Charles Godefroy)는 비행기로 개선문 아래를 지나갔습니다. 이 퍼포먼스로 비행사는 1919년 7월 14일 참모에 의해 강제로 도보 행진을 한 제1차 세계 대전의 비행사들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1919년 8월 7일 개선문 아래를 지나는 비행기 Albert Harlingue / Roger-Viollet




P.S. 에뚜알 광장에도, 바스티유 광장에도 코끼리는 사라졌지만, 대신 낭트에 가면 거대한 코끼리를 볼 수 있습니다. 바스티유의 분수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었겠죠? (낭트에서 봤을 땐 좀 무서웠어요...) 참고로 이곳은 <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 리> 등을 쓰고 공상과학 소설 분야의 선구자인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의 꿈을 현실로 부활시킨 기계 동물 테마파크인 Les Machines de l'île(섬의 기계들)입니다. 왜 낭트인가? 아미앵에 쥘 베른의 집이 있어서 거기가 고향인 줄 알았는데 낭트에서 태어나서 아미앵에서 사망했네요...

&copy; Jean-Dominique Billaud LV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