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다비우(Gabriel Davioud, 1824-1881)는 19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 건축가입니다. 그는 동시대 건축가 중 한 명이자 오페라를 지은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19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의 파리 건축을 대표하는 중요한 건축가입니다. 특히 파리의 정원은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오스만 남작과 파리 녹지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엔지니어인 아돌프 알팡(Adolphe Alphand)과 함께 파리의 녹지 공간을 재설계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파리 시민이 사랑하는 불로뉴 숲, 뷔트 쇼몽, 몽수리 공원과 같은 곳이 그의 업적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파리 거리의 풍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생 미셸 분수(6구), 위대한 탐험가들의 정원에 있는 분수(6구)는 그의 작품입니다. 또한 1860년에서 1862년 사이에 지어진 샤틀레 극장(Theâtre du Châtelet)과 Theâtre de la Ville이 되는 théâtre lyrique을 설계했습니다. 현대 건축 및 도시 계획 역사를 전공한 미술사학자이자 옛 파리 위원회(Commission du Vieux Paris) 사무총장인 시몬 텍시에(Simon Texier)의 인터뷰를 재구성하여 파리 건축을 대표하는 가브리엘 다비우를 재발견해보고자 합니다.
파리를 뒤바꾼 오스만의 개조 사업에서 다비우의 역할
에꼴 데 보자르에서 공부한 가브리엘 다비우는 1843년 파리 시 프로젝트에 합류하여 평생을 그곳에서 일하게 됩니다. 처음에 그는 부감독관이었고, 다음에는 건축 공사의 감독관이 되었으며 곧 오스만 공사의 주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855년에 녹지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알팡과 함께 키오스크, 경비실, 샬레, 철문 등을 설계하며 불로뉴 숲의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건축가인가, 조경가인가, 혹은 도시 계획가인가?
그는 3가지의 일을 동시에 도맡았습니다. 우선 다비우는 도시를 녹지화한만큼 정원을 도시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디자인한 건축 요소들은 파리 전역에서 체계적으로 재생산되어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장관이 수행한 작업을 매우 일관성 있고 통일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파리의 양식을 만든 것입니다. 스트리트 퍼니처뿐만 아니라 분수와 같은 경우도 파리의 통일성과 특성을 담게 되었습니다.
2편에서 계속
'파리건축 산책 Architecture parisienn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에서 이집트 산책하기 1 - 대표 기념물 (0) | 2021.10.15 |
---|---|
19세기 파리 건축 산책 - 가브리엘 다비우(Gabriel Davioud)의 재발견 2 (0) | 2021.10.04 |
프랑스의 승리를 기념하는 샹젤리제의 거대한 코끼리? - 개선문 시리즈 2 (0) | 2021.09.30 |
아치가 아닌 코끼리가 포장될 뻔했다 - 크리스토, 잔 클로드의 포장된 개선문 (0) | 2021.09.29 |
에펠탑을 물들인 7가지 빛깔 2 (0) | 2021.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