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대거상(The Crime Writer Association Dagger)을 수상한 윤고은 작가의 라이브 방송을 보았다. 사실 수상한 지는 벌써 1달이 넘었는데 방금 라방을 보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대거상은 1955년에 제정된 영어권 대표 추리문학상 중 하나로 매년 총 11개의 부문 상을 시상한다. 그 중 번역 추리소설 부문은 영어로 번역된 외국 추리문학 중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상으로, 윤고은 작가는 해당 부문이 개설된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수상자라고 한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간 2016년 한국 문학계에 또다른 경사가 있었다.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은 것이다. 영어권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은 노벨 문학상과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책의 번역가인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 역시 한강 작가와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되었다.
공교롭게도 전부 영국 문학계와 관련이 있는 한국 문학의 겹경사인데, 2016년과 2021년의 사이인 2017년에 영국 문학과 한국 문학이 접점이 되는 일이 또 있었다. 영국 작가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A.S. Byatt)가 토지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7회 박경리 문학상에 선정된 것이다. 바이어트는 런던 대학에서 영미문학을 강의하다 전업 작가로 활동해 1990년 부커상(현재의 맨부커상)을 수상하고 영국 최고 영예지도자상인 커맨더(CBE) 훈장을 받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한국에서의 수상을 맞이하여, 영국으로 달려가 인터뷰를 하였다.
한국에는 '소유(Possession)'와 '천사와 벌레(Angels & Insects)'가 출판되었고 '소유'로 맨부커 상을 수상하였다. 작가님을 만나러 가니 당연히 책 한 권쯤을 소유하는 것은 필수. 런던에 내리자마자 책 두 권을 사들었다. Possession과 The Virgin in the Garden. 나에게 배당된(?) 책은 후자. 그때는 전자가 유명한 책이니 내심 전자를 갖기를 바랐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한국에 출판되지 않은 레어템을 가지고 있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싶다.
바이어트는 2017년 시상식 당시 영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즐거움과 이해하는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언어를 사용하는 즐거움과 이해하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번역가에게 헌정된 사명과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강 작가와 같이 공동 수상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출판지원사업에 선정돼 영국에 출간된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 기본적으로 작가의 훌륭한 원문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하지만, 그 원문의 맛을 살려서 전 세계의 많은 독자에게 그 책을 소개하고 그대로 전달하는 일은 전적으로 번역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번역은 정말 힘든 작업이지만 바로 이 맛 때문에 번역가를, 특히 출판 번역가를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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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바이어트 작가님 책 좀 다시 읽어 봐야지.
그리고 지금 계약한 책 번역도 속도를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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