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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이야기 Actualité européenne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20년 전 그날에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RAPHA Archives 2021. 8. 21. 01:51

20년 만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20년... 왜 20년일까 하다가 

2001년이라는 연도를 보니 바로 떠올랐다.

2001년 9.11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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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벌써 20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전 그날에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이모부가 독일 사람이라 조카도 독일 사람이었는데,

나랑 동갑이었던 그 조카가 그날 문자를 보내왔다.

비행기가 상공에서 추락을 했대나 파일럿이 어쩌고 저쩌고... 그런 장난스러운 내용의 문자였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한참을 보고 있다가 뉴스를 보니...

뉴욕 쌍둥이 빌딩이 불에 타고 있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다 뭐야, 인터넷도 쉽게 할 수 없었던 때였다.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전화방이 있어서 해외로 전화하려면 거기서 전화를 했다. 

(아직도 있기는 있는 것으로 안다)

인터넷을 하려면 인터넷 카페를 갔어야 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쿠어퓌르슈텐담 Kurfürstendamm 근처에 있던 인터넷 카페에서

1시간에 2 DM(무려 유로화가 통용되기 1년 전!) 정도 내고 인터넷을 사용했던 것 같다.

 

Kurfürstendamm 전경. PC방 생각날 때마다 저 카이저 빌헬름 교회도 항상 세트로 떠올랐는데 거기가 거기였네 sourc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urf%C3%BCrstendamm_2003.JPG

 

 

원래 재미 교포였던 중학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친구가 그때 뉴욕에 살고 있었다.

인터넷도, 전화도 쉽게 할 수 없었던 그때

필사적인 마음으로 전화방에서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친구는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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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는 결코 아니다.

진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도와줘야 할 난민들도 많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2015년 샤를리 엡도 테러, 바타클랑 테러,

그 외에도 크고 작은 테러를 겪으면서,

실제로 파리에서의 삶에 위협을 느끼면서 

바타클랑 테러가 난 다음 날 아침

벌벌 떨면서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중에 부르카를 입은 두 명의 여자를 보고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껴봤다면

 

뉴스에 나온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움찔한 건 

그게 PSTD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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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봤을 땐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위험하게 느껴지는

휴전 국가인 한국의 내부는 놀랍도록 평온하다.

설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 통일이 될까?

설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전쟁이 일어날까?

나 역시도 한국에 있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쟁은 현실이고 테러는 현실이다.

나의 삶의 풍경을 바꾸고 실제로 나의 삶을 바꾼다.

 

어제인가 그제, 아프가니스탄 대사의 인터뷰를 읽었다.

양복 한 벌도 못 챙길 정도로 긴박했다고 했다. 

기사 말미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미군이 주둔한 20년 동안, 탈레반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이 태어났고 이미 서구 사회에 익숙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 할 경우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나는 그 내용을 보면서 남한의 현 상황이 생각이 났다.

 

휴전 이후 근 70년, 전쟁을 경험해 본 세대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고, 지난 20년 넘게  교육, 문화, 예술, 정치, 경제 등 온 분야에 퍼져서 익숙해져 버린 이념과 사상. 

 

아프간의 경우와 반대로, 그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동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유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걸 진정으로 명심해야 한다. 

 

전쟁은 현실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