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도난사건의 배후에는?
110년 전 오늘(아니 어제...)인 1911년 8월 21일,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모나리자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110년 전 오늘(어제 아니고 오늘!)인 1911년 8월 22일,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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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8월 22일, 두 명의 예술가가 르네상스 걸작인 모나리자를 모사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신비스러운 미소를 발견하는 대신, 그들은 텅 빈 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던 약 60명의 조사관은 그림이 있던 유리에서 엄지 손가락 자국을 발견합니다. 즉시 루브르 박물관 직원 257명의 지문을 분석했지만 그에 맞는 직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모나리자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2년 뒤인 1913년, 피렌체의 한 골동품점, 그곳에서 모나리자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누군가 피렌체의 골동품 상인에게 모나리자를 판매하려 했지만 그 그림이 모나리자임을 확인한 상인은 그림을 사는 대신 경찰에 고발하였습니다. 이로서 2년 간 종적이 묘연했던 모나리자가 세상에 다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그는 이탈리아의 장식가인 빈센초 페루자(Vincenzo Perrugia)였습니다. 모나리자가 루브르 박물관의 살롱 카레(Salon Carré)에 설치될 때 그림 앞에 보호 유리를 놓은 것이 바로 이 사람이었습니다. 페루자는 1911년 8월 21일 오전 7시, 모나리자를 집어 옷 아래에 숨기고 파리 10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잡힐까 두려웠던 그는 침대 밑에 모나리자를 놔두었습니다. 경찰은 필사적으로 절도범을 찾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나리자가 파리의 지붕 아래, 그것도 침대 밑에 꽁꽁 숨겨져 있던 것도 모른 채 말이죠.
재판장에 선 그는 이탈리아의 작품을 이탈리아로 돌려주기 위해 그림을 훔쳤다고 고백했습니다. 애국심에 호소한 이 고백이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여서일까요? 페루자는 7개월이 감형된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석방된 후 제 1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 군대에서 복무한 그는 결혼하여 다시 파리로 돌아와 페인트 가게를 열었습니다. 모나리자를 훔친 그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이 세기의 도난 이후, 이탈리아 순회전시를 마치고 루브르 박물관에 돌아온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의 최고 스타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방탄유리 속 고이 모셔진 그녀를 손에 닿을 수 없는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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