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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컬렉션과 나폴레옹의 황금 월계수 잎

RAPHA Archives 2021. 7. 21. 00:14

지난 4월 말부터(어쩌면 그 이전부터) 문화예술계가 떠들썩하다.
그 이유는 바로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남긴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때문.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건희 회장이 소장했던 문화재, 미술품 2만 여점이 세상에 나온 것도 모자라 사회에 환원된 것이다.
흥분한 문화예술계는 미술품 대납제도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세미나, 토론회를 열었고, 또 각 시, 도는 이건희 회장 및 삼성과의 인연을 과시하며 이건희 박물관을 유치하기 위해 전쟁을 펼치고 있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 중.

상속세를 내야 하는 마지막 기한인 지난 4월 말일 즈음에서는, 정말 매일같이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에 관한 기사가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중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기사가 있었는데...

https://news.joins.com/article/24046798

"돈이면 된다? 어림없어"···이건희 컬렉션엔 광기가 담겼다

이들은 " '총 감정가 3조원, 시가 10조원'이라는 말로 요약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광기에 가까운 의지가 그 안에 있었다"며...

news.joins.com




이 기사는 이건희 회장의 방대한 컬렉션의 규모를 넘어선 가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 기증 목록을 보고 안 교수가 가장 반긴 것은 불교 불화인 '천수관음보살도'다. 그는 "한국 미술사에서 불화가 매우 중요한데도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불화가 없어 늘 안타까웠다"며 "이제야 빈자리가 메꿔지게 됐다. 국립박물관이 비로소 부끄러움을 면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건희 컬렉션은 절대로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며 "좋은 컬렉션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4가지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재와 미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냥 관심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지대한 관심이어야 한다.
둘째, 좋은 작품과 중요한 문화재를 알아보는 높은 안목이 있어야 한다.
셋째,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바로 결정할 수 있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소장할 기회가 왔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놓치는 경우도 많다.
넷째, 그걸 확보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출처: 중앙일보] "돈 있음 된다? 이 의지는 광기" 이건희 컬렉션에 놀란 미술계



이 기사를 보다가 문득,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관련 경매에 촬영을 하러 갔던 날이 생각이 났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11월 퐁텐블로.
나폴레옹이 황제 대관식 때 쓰기 위해 만든 왕관에 들어갔던 금 월계수 잎 중 하나가 오스나(Osenat) 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인 날이었다.

2017년 11월 19일 Osenat 경매장에서 판매된 황금 월계수 잎과 Baron Gerard의 나폴레옹 1세의 초상화(스톡홀름 국립 박물관) OSENAT - FineArtImages / Leemage


황제 대관식을 준비하던 나폴레옹은, 왕관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해 왕관을 장식하고 있던 6개의 금박 잎사귀를 뺄 것을 요구했다. 왕관을 만든 금세공인인 마르탕 귀욤 비에네(Martin Guillaume Biennais)는 그것들을 딸들에게 나눠주었다. 6개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은 2개로, 하나는 퐁텐블로 성에 있는 나폴레옹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하나가 이날 경매에 나타났다.

프랑스에서의 나폴레옹의 인기를 보여주듯 나폴레옹의 황금 잎사귀에 대한 경매에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곳에는 나폴레옹 컬렉션 수집가인 피에르 장 샬랑송(Pierre Jean Chalençon)도 있었다.

출처 https://www.lexpress.fr/actualite/medias/pierre-jean-chalencon-l-attache-de-presse-de-napoleon_2006002.html

사실 이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는데... 경매 정보를 더 찾아보려고 구글링을 하던 중에 이분이 유명한 나폴레옹 수집가인 것을 알게 되었고, 급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실제로도 저렇게 튀는 머리 스타일에, 저분에 집중되어 있는 취재진들을 보고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대번에 느낄수가 있어서 유명인과의 인터뷰라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라고 하니 몇 년 전 한국사람이 나폴레옹 모자를 경매로 사 가지고 갔다고 이야기했는데 나만 알아들었다는 슬픈 이야기.. ㅎㅎ 이렇게 현장에 직접 가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왕왕 생긴다. 이것이 현장의 묘미랄까?

그럼 결과적으로 나폴레옹 황금 잎사귀는 누구의 손에 들어갔을까?
이 피에르 아저씨와 끝까지 맞붙은 익명의 전화 경매자가 50만 달러에 (여기에 수수료 25% 추가) 낙찰을 받았는데 중국인이라고 했다.
황금 잎사귀는 놓쳤지만 피에르 아저씨는 이외에도 여러 나폴레옹 관련 물품들을 낙찰받았다.

사실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이날의 한 장면은 바로,
경매에 참석한 루브르 박물관 관계자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비에네가 만든 유일한 남성용 보석함을 낙찰받았다. 루브르 박물관이 낙찰받자, 청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경매 사회자가 "프랑스에 남게 되어 다행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낙찰받은 비에네의 보석함  ©Osenat



저 기사를 읽었을 때 왜 4년이나 지난 퐁텐블로 경매장의 그 풍경이 오버랩되었을까?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화가 없다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과의 비교 때문에?

애초에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해 유물 구입 예산(약 40억 원)과 루브르 박물관의 예산은 (약 266억https://presse.louvre.fr/rapport-dactivite-et-bilan-des-acquisitions-2020/)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사실 그보다도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건, 문화재와 미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
문화재와 미술품을 규모와 돈으로만 환산하지 않고,
이것이 왜 가치 있는지, 왜 중요한지, 이것이 왜 국가의 문화재로 남아야 하는지, 국가의 문화재로서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관심... 루브르 박물관이 유물을 낙찰받자, 온 마음으로 기뻐하는 청중들.
게다가, 좋은 작품과 중요한 문화재를 알아보는 높은 안목과, 바로 결정할 수 있는 결단력, 그것을 확보할 수 있는 재정까지. 이 4박자가 맞아떨어져 그날 루브르 박물관은 비에네의 유일한 남자용 보석함을 프랑스 땅에 남길 수가 있었고, 그 가치와 의미를 알기 때문에 그들은 그 숨 가쁜 경매 현장에서도 진심을 다해 루브르 박물관에 박수갈채를 쏟아낸 것이었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매진 행렬로 다시 한번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이때.
컬렉션의 감정가가 얼마인지 평가해보는 것도 좋다. 물론 이 기회에 미술품 물납제도가 정착하면 좋겠고, 이건희 박물관이 만들어져도, 특별전시를 보는 것도 다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문화재와 미술품의 가치를 먼저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사랑한 한 수집가의 노력의 가치와 의미 역시도.


"한 소장가가 평생 들인 노력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이번에 우리 사회가 크게 배우고 갈 부분을 놓치고 마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번 기증에 대해 국가와 정부와 국민이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하고 이에 대해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출처: 중앙일보] "돈 있음 된다? 이 의지는 광기" 이건희 컬렉션에 놀란 미술계



p.s. 피에르 아저씨에 대해서 검색해보니 2019년에 자신이 모은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https://www.telestar.fr/actu-tv/autres-emissions/pierre-jean-chalencon-voila-ou-ira-son-incroyable-collection-napoleonienne-apres-446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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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서 받아 온 책자. 역시나 나폴레옹의 황금 잎사귀가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황금 잎사귀에 대한 개략적 설명과 잎사귀가 어디서 왔는지 출처를 설명한다.


p.s.2 요새 고가구 수집하는 데에 푹 빠져 있는데, 당시 경매장에서 보았던 (내가 살 수 있었을만한) 물건들이 갑자기 아른아른거린다. 하나라도 사 올 걸 그랬나? ㅎㅎ